<머나먼 고향>의 추석

in kr •  2 months ago  (edited)

<머나먼 고향>의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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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에서 방송된 나훈아 콘서트의 위력이 사해를 뒤덮을 기세고 타임라인은 ‘나훈아로 세계 평화’의 분위기로 그득합니다. 나훈아와는 할아버지와 손녀 정도의 차이가 있는 딸아이조차 “내 친구들도 나훈아 보고 오열했대. 단톡방이 난리야.”라고 흥분하는 걸 보니 그 후폭풍이 미루어 짐작이 갑니다. 다시보기라도 봐야 할 것 같은 충동을 느끼게 만드는 반응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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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그런 풍습이 별로 보이지 않지만 옛날 술자리에서는 ‘자기 소개 후 노래 일발 장전’이 거의 패턴화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송년회나 기타 회식 자리에서는 부유한 조직의 경우 밴드를 동원했고 웬만한 식당들은 노래방 기계를 꼭 갖추고 있어야 했지요. (행주산성 근처 식당을 섭외했다가 노래방 기계 고장나는 바람에 들어먹은 욕으로 한 5년 수명이 늘어났을 겁니다) 어쨌든 순번이 돌아와 지명이 되면 쑥스럽게 앞으로 나가 자기 관등 성명(?) 밝히고 ‘FM’ 대로 소리 몇 번 질러 주고 노래 대충 부르고 의례적인 박수 받으면 끝나는 자리가 1년에 열 두 어번은 더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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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런 자리에서 ‘열화와 같은 호응’을 받기는 쉽지 않습니다. 진짜 ‘카수’가 아닌 한 연기하는 듯한 함성과 과장됐지만 분위기 맞추기에 그치는 박수로 끝나게 마련이죠. 저 역시 그랬습니다. 그런데 딱 한 번 어리둥절할만큼의 불길 같은 환호를 받아 본 적이 있습니다. 1996년의 추석 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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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간수업>이라는 드라마가 넷플릭스에 나와서 탐시청했습니다. 그 작가는 제가 모셨던 국장님과 장안에 명성이 자자했던 작가님의 아들이라 더욱 흥미로웠죠. <인간수업> 작가의 아버님이신 국장님께서 1996년 초가을, 입사한지 2년도 안된, 날이면 날마다 깨지는 게 일이었던 저를 소환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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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입봉하고 싶재?” 입봉이란 일본식 한자말인데 AD를 면하고 PD로 자기 연출작을 처음 만들어 내는 행위를 말합니다. 감히 “네 그렇습니다.”라고 호기롭게 대답하지는 못하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정도로 얼버무렸는데 국장님은 생판 엉뚱한 ‘입봉’(?)을 제안하셨습니다.
“니 6mm 준비해서 강남소방서에 가라. 거기서 묵고 자고 하면서 거기서 일어나는 상황들을 찍어라. 그래서 <추적 사건과 사람들> 한 시간짜리를 메우면서 입봉을 해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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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저는 팔자에 없는 소방서 한달살이를 하게 됐습니다. 강남소방서는 사건 사고 많은 강남을 커버하는 곳이었기에 대형 사고나 기타 ‘비주얼’이 되는 일이 많으리라는 국장님의 예측으로 결정된 곳이었지요. 그런데 정말이지 기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강남소방서 개서 이래 이렇게 출동이 없고, 출동을 하더라도 시건 장치 개방, 즉 “우리 집 문 따 주세요.” 선에서 그치는 ‘태평성대’가 제가 들어온 뒤 시작된 겁니다. 그때 소방관님들 입버릇이 이것이었습니다. “하던 XX도 판 깔아 놓으면 멈춘다더니 PD가 와 있으니 이상하게 출동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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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출동들이야 많았지만 국장님께 보고할 만한 ‘굵직하고 화끈한’ 상황은 없었습니다. 딱 한 번 결혼을 준비하면서 부모님들의 상견례가 있어 외출한 날 대형 화재가 발생해서 억장이 무너진 적이 있었죠. 그 이후 소방관님들은 제가 테잎 가지러 회사에 갔다 온다고 하면 장난스럽게 앞을 막았습니다. “안돼! 당신 나가면 사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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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가을은 무척 소란스러웠습니다. 강릉에서 북한 잠수함이 좌초했고 거기서 나온 특수부대원들이 승무원들을 살해한 후 북상하면서 강원도 일대는 비상 계엄 상태가 됐고 공수부대나 기타 특공여단 출신들이 많았던 119 구조대원들은 자기 일인 것처럼 TV 뉴스와 신문을 끼고 공비 추적 상황을 살폈었지요. 그때 강원도 사람들은 태극기를 들고 군인의 호위 아래 성묘를 해야 했었습니다. 송이 철이었던지라 송이 캐러 들어갔던 민간인들이 학살당하기도 했고 군인들도 적잖이 전사했던 스산한 한가위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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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해 한가위를 소방서에서 맞았습니다. 한가위날 밤이었던가 서장님이 전 직원들을 모아 놓고 추석맞이 회식을 선물해 주었죠. 업무 특성상 주류가 없는 게 아쉽긴 했지만 소방대원들은 술에 취하지도 않았으면서도 마치 맥주 한 박스를 마신 듯 신명나게 놀았습니다. 그걸 열심히 찍고 있는데 서장님이 저를 지명하더군요. “PD 아저씨. 나와서 노래 하나 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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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어찌 끌려 나갔는데 무슨 노래를 해야 하나 난감했습니다. 노래방 기계가 없고 마이크만 달랑 쥐어주는데 가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아는 곡이 별로 없었고 있다고 해 봐야 도무지 이 분위기에 걸맞지 않는 노래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사말을 하는 동안 계속 짱구를 굴렸지만 생각나지 않았고 박수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어버버거리는데 문득 머리 속에 <머나먼 고향>이 떠올랐습니다. 아 이건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아저씨들이 많으니까 괜찮겠다. 그리고 여기 분들도 대개 고향 못가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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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남쪽 하늘 아~래 그으으으리운 고오향 사랑하는 부모 형제 이 모옴을 기다려 천리타향 낯선 거리 헤매는 바알~~~~길 한잔 술에 설움을 타서 마셔어어도 마음은 고향 하늘을 달~~~~~~려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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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따라 목청이 구성진 가운데 쩌렁쩌렁 울려서 저도 놀라긴 했지만 소방관님들 듣기에도 괜찮았던 모양입니다. 생애 그런 환호는 처음 받아 보았습니다. 손님 대접을 한다고 오버하기는 했겠지만 전 직원이 기립 박수로 앵콜을 연호하고 “우리는 못먹지만 PD아저씨는 먹어도 돼.” 하면서 맥주를 건네는 분도 여럿이었습니다. 좀 거짓말 보태 말하면 이런 게 스타들이 느끼는 감정이구나 느낄 정도였지요. 노래를 잘했다기보다는 마침 그 노래가 추석날 소방서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정서를 바로 찔렀기 때문이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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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은 제대로 끝나지 못했습니다. 한 30분 진행되다가 별안간 구조대 소방대 출동 벨이 울리면서 다들 우루루 출동에 나섰으니까요. 저 역시 허둥지둥 카메라를 들고 구조대 버스에 올라탔는데 출동해 보니 또 그놈의 ‘시건 장치 개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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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딱 강남 졸부 자식 스타일의 싸가지없는 젊은 놈이 소방관들에게 문 딸 때 문 긁지 말라는 둥 왜 이렇게 더디냐는 둥 진상을 떨어서 비위가 상할 대로 상했죠. 제가 분통이 터져서 그 젊은 놈 옆에서 대상 없는 욕설을 퍼부을 지경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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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 구조대원들의 입에서 아름답지 못한 소리가 튀어나왔고 공기가 좀 싸해졌을 때 구조대장님이 엉뚱하게 저를 불렀습니다. “PD 아저씨. 아까 했던 노래 다시 한 번 불러 봐요. 분위기 좀 바꿔 보자.” 그러자 또 예상치 못했던 환호가 차 안에 가득찼습니다. 내가 노래를 정말 잘하나 보다 착각하고 싶을 만큼 뜨거운 반응이어서 우쭐(?)한 마음에 다시 신나게 머나먼 고향을 찾아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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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은 휘영청 강남 스카이라인 위에 떠올라 있었고 부잣집 문 따 주기 위해 회식을 파하고 나온 소방관들의 어깨를 희미하게 물들이고 있었죠. 노래는 고향에 가지 못하는 버스 안의 사람들의 합창이 됐습니다. 그 합창을 선도(?)하는 저 역시 혼신의 힘을 다해(?) 열창을 했지요. 마치 나훈아라도 된 듯. 아니 너훈아라도 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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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코로나가 많은 사람들의 고향길을 막았습니다. 추석은커녕 몇 달째 집에 가지 못하고 가족도 만나지 못한 의료진들과 그 외 수고하시는 분들은 24년 전의 소방관 아저씨들처럼 ‘머나먼 고향’을 그리며 마음만을 고향길에 달려 보내고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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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나훈아 콘서트에서 <머나먼 고향>이 불려졌는지는 모르겠는데 다시금 많은 분들을 위해서 이 노래를 나직하게 불러 보고 싶습니다. 뭐 이러니 등촌현빈이 너훈아라도 된 것 같군요. 참 입에 달라붙는 노래입니다. “천리타향 낯선 거리 헤매는 발길~~~ 한 잔 술에 설움을 타서 마셔도 마음은 고향 하늘을 달려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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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는 여러분 메리 추석입니다. 메리 추석 앤 해피 넥스트 이어. (올해는 좀 글렀다고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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